내부고발자?
어제인가? 모처럼의 휴가라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김밥 놀이를 하고 있다가 OCN인지 하여튼 영화전문 케이블 TV에서 하는 "Inside Deep Throat"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어사전에서 Deep Throat를 검색하면 '
내부 고발자'라고 나온다. 그럼 이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익명의 정보제공자가 자신을 칭한 이름이 바로 Deep Throat 였기 때문에 그 이후로 이와 같은 내부고발자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Deep Throat는 내부고발자의 이름 이전에 1972년 미국을 강타한 포르노 영화의 제목이다.

다큐멘터리 Inside Deep Throat에서는 이 영화가 어떤 이유로 성공을 했고,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정치 경제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전설적 포르노 영화
이 영화는 기존 포르노와 다른 몇가지 시도를 최초로 하게 되었다. 한가지는 최초로 영상물에서
fellatio를 시도한 점이다. 그 이전, 정상위를 벗어난 모든 sex는 죄악이고 그것을 표현하면 위법이었다고 한다. 사실 위법이 아니더라도 구강성교를 포르노에서 표현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고. 그런 사회에서 여주인공 린다의 멋드러진 혀기술이 얼마나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된다.

또다른 한가지는 이 영화는 최초로 여성의
엑스터시를 그렸다. 그 이전 일반인 대부분의 생각이 여성은 엑스터시를 느낄 수 없거나, 느끼더라도 남성의 그것과 같이 절정감을 느끼지는 못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그런 일반인의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마지막으로 감독의 새로운 도전은 여성은 질보다
클리토리스를 자극함으로 인해 더 큰 성적 만족감을 얻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일반 대중은 사람의 몸에 클리토리스라는게 있는지도 모르고 있던 시절이다. 지금 글을 쓰기 위해 검색을 해보니 사전에는 클리토리스가 나와 있지도 않고 이 단어 자체는 현재 성인 검색어로 지정되어 있다.

이렇게 새로운 내용과 유머와 위트가 가득한 구성으로 영화는 개봉을 하자마자 엄청난 인기와 입소문을 타게 되었다. 그 당시 포르노 영화는 지금처럼 집에서 TV로 은밀히 보는 것이 아닌 전용극장에서 상영이 되는 형식이었는데, 최초로 이 영화는 여성들이 즐겨보는 포르노 영화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수많은 여성운동가들이 이 영화가 진실된 여성의 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극찬을 했었고, 나중에는 뉴욕 타임즈에 최초로 거론된 포르노 영화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영화의 호화로운 성공은 계속 될 수 없었는데 이유는 바로 지독하게 보수적인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이었다. 보수적인 미국 기독교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닉슨은 자신들의 잣대로 미국의 도덕성을 평가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이런 포르노 제작자들은 순식간에 '마귀새끼들'이 되어 버렸다.





금지된 사과
닉슨 정부는 이런 마귀새끼들을 잡아 넣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해 포르노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밝히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 위원회가 만든 리포트는 '그러한 것(사회적 악영향)을 전혀 증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야 말았다. 닉슨 정부는 그 리포트의 결과는 완전히 무시하고 포르노 영화를 고사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으며, 당연히 그 최초의 제물은 당시 뉴욕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던 Deep Throat가 되었다.

Deep Throat의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영화가 얼마나 교육적이며 성인들의 성생활에 도움을 주는지를 밝히고자 무난히 애를 썼다. 실제로 그 당시 재판을 맡았던 검사와 판사까지도 "그 일로 인해 정말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뉴욕주 내에서의 Deep Throat의 상영을 금지시켰다.

이런 재판부의 결정은 오히려 Deep Throat의 인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사람들은 뉴욕에서 한 포르노 영화가 상영금지 되었다는 소식을 각종 신문들을 통해 접하게 되었고, 그 영화를 보고 싶어 했다. 발빠른 극장주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의 지역 내에서 그 영화를 상영하려고 부지런히 노력을 했다.

뉴욕에 이어 많은 주들에서 영화는 인기를 끌었고, 또한 상영금지 되는 수순을 밟아 나가게 되었다.




사면초가
그 당시, 포르노 영화의 제작자들은 대개 마피아였다고 하며, Deep Thrroat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감독은 어느날 갑자기 제작자가 불러, 영화에서 손을 떼라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영화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외에도 수많은 극장주들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자신의 극장을 마피아에게 넘겼다는 인터뷰도 나온다.

원래 대개의 공무원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 그 모양인지, 그 당시 미정부는 이런 영화 제작자들을 단속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을 구속하기에 이른다. 당국자의 설명은 '영화에 출연할 사람이 없으면 영화를 찍지 못할 것이 아니냐'였다. 그래서 본보기로 Deep Throat의 출연배우들이 구속되었다.

여자주연 배우인 (엄청난 혀기술을 보여줬던) 린다는 불과 1200불 밖에 받지 않았고 영화 촬영 내내 학대를 받으며 촬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죄값까지 뒤집어 쓰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영화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스탭들은 협박으로 인해 모든 권리를 잃고, 한편으로는 억울하게 옥살이까지 하게 될, 그야말로 사면초가인 와중에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정권이 바뀌는 것 뿐. 정권이 바뀌어 꼴통 닉슨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 뿐이었다.




워터게이트
그런데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닉슨이 물러나게 된 것이다. 그것도 Deep Throat로 인해!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졌고, 그 결정적 제보자는 자신을 Deep Throat 라고 칭하였다.

제보자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 수사당국은 그것을 절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닉슨에게 불만이 있는 단순 내부 당국자였을수도 있고, 아니면 정적(政敵)의 음모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들의 포르노 산업을 망치려 드는 것에 발끈한 마피아의 음모였을지도 모른다. 아직 진실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제보자가 스스로를 Deep Throat 라고 칭한 것에는 어느 정도 시사할 점은 있다.




여성운동가
그러나 닉슨 이후에도 Deep Throat는 순탄하지 못했다. 최초 개봉 당시 지지를 해주었던 여성운동가들이 성의 상품화라며 이 영화를 반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극장 개봉 당시 "비록 출연료로 1200불 밖에는 받지 못했지만, 엄청난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행복해요"라고 말을 했던 여주인공 린다 러브레이스는 자신이 제작자의 성적 노리개였으며 얼마나 학대와 폭행을 받았는지 TV 인터뷰를 통해 증언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앞에서는 연일 페미니스트들의 시위가 잇달았다.




주연배우들

린다 러브레이스
감독의 이야기에 따르면 '자신의 이야기 보다는 주변인들의 이야기에 행복을 느끼는' 여자. 최초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에는 행복했지만 이후 페미니스트들이 '너는 불행하다'라고 말을 하자 스스로 불행하게 느끼기 시작해 열심히 사회 운동에 참여. 그러나 결국 스스로가 페미니스트들에게 이용당했다고 느껴 50대에 다시 포르노 산업에 투신했다. "페미니즘은 나에게 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았다. 나는 내 이름으로 돈을 벌어 딸과 손녀 손자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고 인터뷰. 포르노 영화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이 될 것으로 믿었으나 헐리우드에서 철저히 외면 당했고 여성운동가들에게 철저히 이용당했으며, 이후 취직이 되어도 정체가 발각되는 즉시 잘리기를 여러 차례. 최후에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해리 림스
린다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성공으로 큰 명성은 얻고 인생은 실패하게 되었다. 그가 포르노 배우의 근절을 노리는 정부에 의해 구속되자,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헐리우드 스타들의 적극적인 옹호가 잇다르게 되었다. 이후 석방된 해리 림스는 영화 및 재판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췄다고 여겨 헐리우드 진출을 노렸으나, 철저하게 외면당하게 되었다. 이후 술과 마약에 찌들어 포르노 영화에 출연해서도 성행위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후 이 영화를 구해서 볼 수 있었다. 뭐랄까... 평범하다는 말, 그리고 지금의 포르노에 비하면 지극히 건전해(?) 보인다는 말 이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다큐멘터리가 왜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었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고...

이 영화는 해당 분야에서 '최초'라는 여러가지 금자탑을 세웠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화되고 덛더욱 발전(?)하다 보니 후세에 영화를 보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심심한 영화가 되어 버리고 말았던 모양이다.